그리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시간. 꽤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한 38L 들이의 MILLET 배낭에 구기듯 짐을 챙겨 넣는다.
숙소를 나서는데, 아가씨 둘이서 주인아저씨께 지하철역을 물어보고 있다. 마침 그쪽으로 가는 길이라, 내가 알려주겠다고 했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멈칫멈칫 사진을 찍고 있는 내가 적응이 안 되었는지 (많이 걸어다녀서 꽤 타기도 했다.) 낯설어서 그랬는지 아가씨들이 조용히 따라온다. 잠깐이지만, 오랜만에 일행이 생기니 또 색다른 느낌. 중간에 보이는 간판을 보면서, 실없는 농담도 해가며 걸으니 쓸쓸하지 않아 좋다.
대구에서 왔다는 아가씨들이 시작하는 이곳 여행에 행여 도움이 될까 싶어 이것저것 얘기해주다 보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지하철역이 가까워진다. 밝은 햇살이 반갑다.
1일 승차권 사는 법이나, 지하철 노선표 보는 법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알려줬다. 뭔가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내가 베푸는 친절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길. 그네들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길 바래본다.
(한편, 얼굴이 자세히 나오지 않아 일단 올리긴 하는데, 문제가 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 그렇다면, 지적해주시길.)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떠나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나는 어쩐지 아쉽다. 반대편 방향으로 달리는 열차에 몸을 싣고 하카타역으로 간다.
처음으로 후쿠오카에 도착했을 때 들른 하카타역에 도착. 그때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그런지 지하철역은 낯설다.
개찰구를 지나 짐을 맡겨둘 곳을 찾아본다.
여행 동안 꽤 애용했던 코인락커. 이번에도 내 배낭 잘 부탁한다.
깔끔하게 꾸며진 역 안 분위기가 맘에 든다. 담백한 색감.
전에 버스를 탔던, 교통센터로 나가는 길을 찾았다.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사진을 좀 정리해볼 생각으로 인터넷 카페를 다시 찾았다.
슬금슬금 음료수를 뽑아 마시며, 인터넷의 어딘가에다가 사진도 옮겨 놓고 한국 소식도 알아본다.
시간이 금방 다 되어버려서, 역시 꽤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며 짐을 챙겨 일어선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선다.
잠깐 화장실에 들르려고, 붉은 복도를 걸어 들어간다.
지구에 좋아요.(地球にやさしく)라고 적힌 종이컵이 예뻐 보여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건물에서 내려가려고 인터넷 카페를 지나는데, 직원이 나와서 -_- 계산했느냐고, 막 묻는다. 당황해서 말도 나오질 않고;;; 순간, 손짓 발짓으로 "나 계산했어요."를 설명하는데 진땀을 뺀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지만 꽤나 당황했다.
교통센터를 나서서 이제 어딜 갈까 하고 길을 찾는다. 하카타역의 마크는 하카타 특산품인 화려한 문양의 비단이다.
처음 도착한 곳에서 마지막 날의 아침을 보낸다니 나름 재미있다. 흐릿흐릿한 날씨에 걱정했던 첫인상과는 달리 후쿠오카는 나에게 좋은 날씨와 재밌는 기억들을 잔뜩 남겨줬다. 거리에 가득한 햇볕에 따뜻한 기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