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20070109 내게 사진이란 것은

pakddo 2007. 1. 9. 19:00


당신은 어떤 이유로 사진을 찍으십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저에게 있어서 사진이란 것은 어떤 의미인지 혹은 '왜 사진을 찍는지.'랄까 하는 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쌓아놓은 사진 산더미를 뒤로하고 -_- 두서없는 글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가만있자. 사진을 언제부터 찍게 되었더라...,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셔서 소풍 때면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게 해주셨어요. 자연스레 카메라와 친해지긴 했지만 그땐 뭘 알고 찍은 게 아니라 기념사진을 많이 찍었답니다. 친구들 모습이 주가 되던 정겨운 사진들 말이죠. 서랍 속을 뒤지다 보면 보이는 빛바랜 추억들도 꽤 많이 남겨주었어요. 국민학교 5학년 때였던가 대전에서 엑스포가 열릴 때 찍었던 꿈돌이 분수 사진이 기억나네요. 카메라에 음료수를 흘려서 혼났던 기억도 슬쩍 고개를 드는군요. 하핫.

사진은 참 기분 좋은 것이었어요. 뭔진 잘 모르지만요.

중학교 3학년 때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어떤 친구였느냐 하면 그저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는 친구였어요. 어머님이 사진 작가시면서 코닥DP점을 운영하고 계셨고, 자기 카메라도 항상 가지고 다녔던 좀 별난 친구였죠. 이 친구 덕에 집에 있던 그때 처음 nikon FM2를 만져보게 되었어요. 아버지도 사진에 좀 뜸해지셨을 때라 장롱에 박혀있던 걸 꺼내서 만져보면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나요. 노출을 알겠습니까, 조리개를 알겠습니까. 그렇다고 셔터 스피드는 아나요. (물론 지금도 별로 신경을 쓰진 않습니다만. -_-) 필름을 넣고 찍어 보기보다 공 셔터를 남발 하던 때도 많았죠.

뭐 그때까지만 해도 어떤 이유나 의미가 있어서 사진을 찍진 않았던 것 같네요.
단지 재미있었거든요. 사진 찍는 게.

고3 때쯤이었나 nikon에서 멋쟁이 디지털 카메라 coolpix 990이 나왔었어요. 중학교 때 만난 저 친구랑 갖고 싶다를 연발했었죠. snowcat씨가 한동안 저 카메라로 사진을 많이 찍었었어요. 그저 부러워할 뿐. 비싼 가격이나 여타 여건 때문에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지라 그럭저럭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디지털카메라를 갖고 싶은 마음에 che-ez boxx 라는 토이카메라를 사서 신나게 가지고 놀기도 했습니다. dcinside에 사진도 올리고 막 그랬었어요. -ㅁ-; 그러던 중에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제대로 된 디지털 카메라를 사보겠다고 원주에서 한 달여를 혹독하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거금을 가지고 몽창 coolpix 4500에 쏟아 부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디지털 사진 세상에 빠지게 된 거죠.

아마 그때쯤이었을 거에요. 4500을 샀을 때 즈음? 4500씨를 손에 쥔 후부터는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뭔가 찍기 시작했어요. 매일 내가 걷는 길이나 보이는 풍경 혹은 먹은 음식, 읽고 있는 책 같은 것들. 솔직한 기록이랄까. 아니면 습관이 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차곡차곡 쌓이는 사진들을 물끄러미 보다 보면 내가 사진으로 일기를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기억력이 좋질 않아서 (머리가 나빠서) 금방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일상들이 컴퓨터 한구석, 필름 한구석에 곱게 쌓아가는 느낌이 좋아서 사진을 찍는다고나 할까요. 아침에 출근하던 길 한구석에 피워진 꽃 한 송이를 그대로 담아서 가질 수 있는 재미도 있고, 어제 만났던 친구의 웃음도 가질 수 있었답니다. 그런 재미에 푹 빠져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게 중학교 때부터라고 따지면 벌써 10년째에 접어들었네요. 말도 되지 않는 사진경력 10년차로군요.

그때 이후로 coolpix 5400이나 dynax5d, istds같은 멋진 카메라들이 제 손을 거쳐갔지만 지금 저한테 남은 건 자그마한 멋쟁이 coolpix 3700하고 아버지가 쓰시던 따뜻한 필름 카메라 fm2, af600만 남았습니다.

여러 카메라도 카메라지만 참 많은 양의 사진을 찍어낸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없어진 사진도 많고 잊은 사진도 많습니다만 우연히 사진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게 그렇게 신경쓰이고 안타까울 수가 없어요. 그냥 사진 한두 장이라고 생각하고 치울 법도 한데 그게 잘 안되네요. 추억이 남아서일까요.

이번 여행에서 잃어버린 사진 300여 장은 특히 더 아쉬워서 일본 사진을 정리하다가 한동안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어요. 뭔가 빠진 느낌이 너무 싫어서 그냥 계속 미뤄두고 있었드랬죠.

뭐 어쨌거나 무덤덤하게 잃어버린 하루도 마치고 났습니다. 계속 열심히 올려 보는 수밖에요. 후후. 여행기가 끝나고 나서는 쌓아두었던 사진을 올릴 생각입니다. 제가 사는 모습을 계속 기록한다는 의미일까요.

어쨌거나 장황한 글을 적어놓았지만 결론은 쉽게 내려진 듯 하네요.


사진은 저의 이야기입니다.

그저 담담한 이야기꾼이 되어서 조용히 '나'를 전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글솜씨가 좋은 것도 아니고 그림이나 그런거 그릴줄 몰라요. -_-;

그저 몇장의 사진이지만 충실히 저 자신을 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Script
쓰고보니 부끄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