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역에서 떠나는 기차를 타고 달린 지 한두시간쯤 지났을까. 졸다 깨서 바라본 창밖에는 맑은 하늘만 고요하다.
구마모토 역에 도착을 기념하는 당당한 포즈로 기념촬영을 하고서는 어딜갈까 고민이 되어서 여행 안내소에 몇 번이나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나중에는 지나가는데 직원이 보고 웃더라. 흐흐.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다들 덜덜 떨면서 커피를 한잔하기로 했다. 커피 마시면서 뭐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말고기 먹으러 가자고 결정. 준호가 당당히 여행안내소에 가서 말고기 음식점이 잔뜩 그려진 팸플릿을 가지고 왔다.
팸플릿에 나온 곳을 찾으러 전차를 타고 이동. 이름도 잘 모르는 정류장에 내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번화가를 헤맨다. 은은하게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GPS와 다양한 정보를 조합해서 찾아낸 말고기집. 원래 찾던 집인지는 잘 모르겠다. 주문을 마치니 기본 셋팅을 해준다. 두부 위에 양념을 살짝 얹은 것이 맛이 꽤 좋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이게 얼마였더라. 일단 배고프니까 먹기 시작. 근데 그다지 큰 특징은 없다. 이건 질기다 이건 부드럽다 등등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아, 말고기는 이런 맛이구나 하고 느껴본다. 근데 양이 적어... ㅠ.ㅡ
아무래도 양이 모자랄 것 같아서 이 근방의 특산물인 '갓'으로 만든 볶음밥 전격 주문. 오히려 이게 특색있게 맛있다. 원선배가 말고기 별거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진짜로 그렇다는 점에 다들 격하게 공감하고 가게를 나선다.
계산하고 나오는데 미묘하게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가격이 더 나간다. 손짓 발짓으로 물어봤더니 기본으로 나온 두부 요리의 가격을 따로 친 것. 속은 것 같다고 성질을 냈지만, 일본에는 실제로 음식점에서 오토시(お通し) 라고 해서 묻지 않고 나오는 일종의 전채 요리가 있다고 한다. 묻지않고 돈을 받는 뭐 그런 거. 자릿세 같은 개념도 포함된 느낌이다.
어쩐지 맛있더라니...
일단 구마모토에 왔으니 다들 간다는 구마모토 성엘 들렀다. 물론 늦어서 입장은 불가. 그냥 성곽을 돌기로 했다. 기념으로 남는 건 사진이라며 준호는 열심히도 포즈를 취한다. 우리가 언제 여기서 해보겠냐며 뜬금없이 달리기 시합도 한판!
다시 거리를 이리 저리 둘러본다. 初午大祭(hatsuumataisai)라는 축제를 알리는 붉은 깃발이 여기저기 흩날린다. 아 연초구나...
마침 보이는 스타벅스에도 잠깐 들렀다가 나왔다. 역시나 찾는 물건은 품절. 상점도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한다.
늦기 전에 후쿠오카로 이동하기 위해서 바쁜 걸음으로 전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 사이로 전차에 오른다.
역으로 가는 전차안에서 운동(?) 하고 서로 동영상을 찍으며 낄낄대다가 문득 다른 사람의 일상을 훔쳐 바라본다. 유심히 바라보고 머릿속에 담는 잠깐의 행위로 저 사람에게는 스쳐 가는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순간으로 기억된다.
낡아 보이는 운전석.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잠깐 눈도 감았다가 하는 사이 전차는 한적한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뭔가.... 이상한데?
도착하고 보니 이곳은 上熊本駅(kamikumamotoeki) 정류장. 구마모토 역과는 좀 거리가 있다. 일단 거리로 나가서 어찌하나 알아보려는 찰나. 규수가 전차에 장갑을 놓고 내렸단다. 부랴부랴 역 사무실에 갔더니 장갑을 돌려준다. 이때다 싶어 구마모토 역을 어떻게 가냐고 물었더니 다시 전차를 타고 가면 된단다. 다시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한 가지 방법을 더 알려준다. 어차피 JR 라인에 있는 역이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가라는 것. 작은 친절함에 감사하며 다시 걷기 시작한다.
열차 시간이 좀 남아서 텅 빈 역에서 캔음료를 뽑아 마시기도 하고 원선배가 핸드폰에 받아놓은 앱으로 동영상 틀어놓고 셔플댄스도 연습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열차가 올 때가 되어가는지 사람들이 플랫폼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오고 가는 관광객들이 나누는 한국말은 들리지 않은지 오래. 실수에서 비롯되었지만, 흔히 찾기 어려운 이런 곳을 발견하고 경험하게 되는 여행 정말 좋다.
고요한 역 사이로 열차가 들어섰고 우리는 다시 후쿠오카를 향해 기차여행을 떠난다.